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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8. 10:00 - 알 수 없는 사용자

에브리바디 올라잇(The Kids Are All Right,2010) - 너무나 평범한, 가족 이야기

 


 

에브리바디 올라잇(The Kids Are All Right,2010)
- 너무나 평범한, 가족 이야기

 

감독: 리사 촐로덴코

출연: 줄리안 무어, 아네트 베닝, 마크 러팔로

장르: 코미디, 드라마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퀴어’영화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가족영화'다. 최근 들어 동성애가 매체 속에서 공공연히 등장하기는 하지만, 상업적 코드로 이용되거나 혹은 ‘게이’문화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같은 동성애임에도 우리 사회에서 레즈비언이 양지의 코드로 이용된 영화나 드라마는 거의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퀴어물은 ‘후회하지 않아’나 ‘브로크백 마운틴’, ‘아이다호’ 정도이다. (가끔 ‘사마리아’가 레즈비언 이야기라는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이성애 규범주의에 젖어있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어디냐 싶다마는, 그것이 (특히 우리사회에서) 남성 간의 사랑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브리바디 올라잇이라는, 레즈비언의 경험을 말하면서 일상적인 가족 문제를 그린 영화의 등장은 너무나 반가웠다.

 


아빠를 찾아서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가족 영화다. 줄스(줄리앤 무어)와 닉(아네트 베닝)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들 사이에는 사춘기 아들 레이저와 대학에 합격한 똑똑한 딸 조니가 있다. 이들이 같은 정자를 기증 받아 낳아 기른 자식이다. 이 특별한 가정에서 조니가 대학에 들어가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줄스와 닉은 불안하다. 안정적이고 영특한 조니와는 달리 레이저는 아직 길을 몰라 갈팡질팡한다.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친구 한 명뿐이다. 누나와 달리 잘하는 것도 없다. 그런 레이저를 바라보는 엄마들 역시 불안하다. 조니가 대학으로 떠나기 전 여름날, 레이저와 조니는 아빠를 만나기로 한다. 그 후에 아빠 폴과 줄스와 닉이 대면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갈등과 사건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비긴 어게인'으로 사랑받는 마크 러팔로가 아빠로 등장한다는 사실!)


동성애가족? 이성애가족?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레즈비언 가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가정과 다를 바가 없음을 보여준다. 가족의 생계부양자인 닉은 성공한 의사이고 줄스와 아이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불안한 여느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줄스는 닉을 이해하면서도 항상 받아들여주는 쪽이고 자신의 인생에 열등의식을 느끼며 닉이 자신에게 더 귀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아이들과의 유대가 돈독하고 레이저를 보듬는 것도 줄스 쪽이다. 이렇듯 에브리바디 올라잇의 가정은 이성애 핵가족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 무엇인가 다를 것이라고, 동성가족은 특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의 환상을 깨고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동성가족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똑같이 자식들과 갈등하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 불안해하고, 하지만 또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는 일반가족의 이야기이다.

 

 

 감독 리사 촐로덴코는 실제로 동성애자이다.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만큼 영화 속 갈등과 화해는 생생하다. 요즘 들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가족의 위기’는 정확하게 말하면 ‘이성애 핵가족의 위기’이다. 우리 사회에서 규범적이고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가족의 형태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 불안을 반영한다고 보고 가족주의로의 회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가족의 위기는 불안이 아니라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우리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족의 등장, ‘가족’이 아니라 ‘가족들’의 태동을 겪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나타내는 현상이다. 단일한 형태의 가족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유대관계로 묶인 다양한 가족들의 형태를 인정하는 과정에 놓여있는 것이다.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이러한 생각과 맞닿아 동성애 가족이 가족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일반 가족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성애 가족도 똑같이 사랑하고 갈등하며, 자식들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영화의 원제가 ‘The kids are all right.’ 이라는 것은 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정상가족 신화'로부터 '가족들'의 가능성으로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점은 동성가족이 가족의 해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평범함과 일상적임을 강조한 감독의 시도가 너무 기존의 가족체계로 환원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닉은 아버지이고 줄스는 어머니이다. 이성애 가족을 규범체계로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동성가족이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구도이다. 그러나 다양한 ‘가족들(families)’의 형태가 다시 하나의 ‘가족(the family)’으로 환원되는 한계가 발생한다.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나의 선입견이 너무 강해서 내 스스로 닉을 아버지로, 줄스를 어머니로 보는 한계일수도 있겠으나, 레즈비언가족의 평범함을 강조하면서도 기존의 가부장적 핵가족의 모습을 반추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줄 평 'EVERYBODY' all right 하진 않지만, 이것으로 충분한 가족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