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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5. 10:38 - 알 수 없는 사용자

[일본/홋카이도] 내리는 눈만큼 포근했던 오타루


그 겨울, 그 도시 첫 번째 이야기

내리는 눈만큼 포근했던 나의 오타루

 

 

 

그런 곳이 있다. 어떠한 인연 없이도 마음이 가는 곳이. 태어나지도 않고, 아는 이 하나 없고, 처음 내딛는 땅이지만, 오래전부터 지내왔던 곳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 내게 오타루는 그런 곳이었다.

 

 

영화 <러브레터>로 잘 알려진 오타루. 그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순백으로 뒤덮인 겨울의 오타루로 가는 날을 꿈꿨다. 단지 며칠 머물고 떠나는 여행자가 아닌,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기회를 얻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그 겨울, 일본 가장 남쪽에서 북쪽으로 날아갔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출발한 특급 열차는 증기를 내뿜으며 기세 좋게 달렸다. 삿포로를 지나 오타루에 가까워지던 길, 갑자기 눈앞이 트이며 바다가 나타났다. 눈 덮인 겨울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푸르렀고,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러브레터의 여자 주인공의 집이 있던 제니바코를 지나고, 숨 막힐 듯한 풍경 저편으로 여러 집들이 모인 마을이 보였다. 오타루의 시작이었다.

 

약 1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미나미오타루는 한적하고 세월이 묻어 있는 작은 역이었다. 그날도 오타루답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펑펑 쏟아지는 눈 속을 걷는 내내 생각했다. 어쩐지 낯설지 않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순간 느꼈다. “아, 집이다.” 집에 돌아온 듯한 안도감. 일본에서 몇 달을 지내며 처음으로 든 감정이었다.

 

오타루는 한때 ‘북쪽의 월가’로 불릴 만큼 항구도시로 번성했던 곳이다. 하지만 점점 해운업이 쇠퇴하면서 사람들이 삿포로 등 대도시로 나갔고, 인구가 줄며 도시의 경제는 침체하였다. 지금 오타루 관광지의 중심인 오타루 운하도 예전에는 훨씬 더 넓었다고. 현재 모습은 예전 넓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지로 유명해졌고, 현재는 관광 산업으로 점점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오르골당'은 오타루 운하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 관광지다. 그래서 보통 오타루의 오르골 역사가 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타루는 본래 오르골보다 유리 공예로 더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어두운 바다를 밝히기 위해 배에 매달 수 있는 유리 볼을 많이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유리 공예가 일찍이 발달하였다고. 실제로 오르골당을 기준으로 사카이마치 거리를 걷다 보면 기타이치 등 역사 깊은 유리 공예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의 오타루를 보고 싶다면 12월~2월이 여행하기에 적합하다. 12월에는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장식과 행사를 즐길 수 있다. 가장 붐비는 때는 2월. 삿포로 눈 축제와 비슷한 시기에 오타루에서도 ‘유키 아카리 축제’가 열린다. ‘유키’는 눈을, ‘아카리’는 빛을 의미한다. 눈으로 거리를 장식할 모형을 만들고, 그 안에 초를 놓아 어둠을 밝힌다. 운하엔 유리 볼에 담긴 초들이 줄줄이 엮여 물 위에 놓인다. 눈과 작은 불빛으로 수 놓인 거리는 오타루의 겨울 풍경에 정점을 찍는다.

 

 

오타루에서 보낸 두 달 남짓한 시간은 내 생에 포근한 나날이었다. 감히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내가 제2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분을 만났고, 수많은 여행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웅하는, 내가 꿈꾸던 삶을 보냈다. 동화 속 마을 같은 풍경은 물론 일상의 풍경까지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서툴지만 셔터를 수백 번 눌렀다.

 

 

가끔은 모든 것이 충만했던 그 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커다란 창밖으로 흩날리는 탐스러운 눈송이. 거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거리를 메우던 오르골 소리. 가게 앞에서 손님을 맞던 눈사람들. 하얀 눈이 내리는 날에는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오타루가 더욱더 그리워진다.

 

 

Post by Melanell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