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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6. 10:00 - 알 수 없는 사용자

내 심장을 쏴라 (2014)-내 시간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청춘들”을 위한 헌사

 

 

내 심장을 쏴라 (2014)
-내 시간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청춘들”을 위한 헌사

 

감독: 문제용

출연: 이민기, 여진구

장르: 드라마

 

 

스무 번째 생일을 맞던 날, 함께 상경하여 의지하던 친구가 선물로 책 한 권을 줬다. 그 책이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 였다. 유난히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의 다리를 건너와 중심을 찾으려 애쓰던 때에 뭐라 딱 집을 수 없이 위로가 되던 책이었다. 이제 다시 사회인으로 나가는 긴 다리를 건너려는 이때에 다시 ‘내 심장을 쏴라’를 영화로 만난 것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청년들은 어떻게 미친놈이 되었나

영화의 무대는 정신병원이다. 불완전하고 위험한 사람들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곳. 그러나 환자들의 안전과 보호를 책임지는 이 공간에서 이들이 마주하는 것은 폭력과 규율이다. 이들은 결국 보호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깥의 완전하고 안전한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격리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신병자인 승민과 수명, 그리고 같은 병동 사람들은 가슴에 난 큰 구멍만 빼면 그리 ‘미친’ 것도 아니다. 이들을 미친놈 취급하며 같은 인간의 범주에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인 간호사, 기회주의자인 원장, 이기적인 승민의 형이 오히려 더 부족한 사람들로 보인다. 자유를 뺏긴 것도 모자라 개인들의 꿈마저 짓밟히는 환경 속에서, 이들은 미친놈으로 ‘만들어져’ 간다. 환자들을 위로하는 것은 끔찍한 주사도, 전기치료도 아닌 서로의 존재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수명과 승민은 정말로 미쳐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나에게서 도망치는 자와 나를 쫓는 자

복잡한 가족사에 정신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수리희망병원에 강제 입원된 승민과 벌써 여러 번 여러 정신병원을 거쳐온 이수명. 승민과 수명이 계속해서 서로를 의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명은 나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는 사람이고 승민은 반대로 끊임없이 ‘나’를 찾고자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수명은 다른 이들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도움을 주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에서는 “유령”이다. 그런 수명은 계속해서 자신의 두발로 서 있고자 요란스레 두리번거리던 승민이 좌절을 겪을 때마다 점점 더 마음이 쓰인다. 그런 수명에게 승민은 묻는다.

"넌 어떤 놈이냐? 숨는 놈, 견디는 놈 말고 … 네 인생을 사는 놈. 그런 놈이 있기는 하냐"

 

승민의 탈출을 지켜보면서, 수명은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본다. 승민이 넘겨준 보트 키를 잡고 배를 몰았을 때 스스로가 가고 싶은 곳으로, 숨쉬고 싶은 곳으로 보트를 모는 경험을 한다. 수명은 두 손에 힘을 주어 키를 돌리는 손맛을 느낀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기억과 삶을 인정하고 세상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칩니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친다고.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푸코는 인간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율화하여 ‘온순한 개인’으로 만드는 사회적 구조로 학교, 군대, 정신병원, 공장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보여주듯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군대’라는 단어가 종종 나온다. 정신병원과 마찬가지로 폭력으로 인간을 규율화하는 공간. 환자들에게 시간표대로 활동하고 교육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학교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더 확장해본다면 제대로 규율화된 정상인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체가 이 정신병원에 다름이 아니다. 영화 속 정신병원과 인물들은 지금, 여기 한국사회를 극단화하여 청춘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속한 시간과 공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시공간에서 ‘나’이고 싶어 발버둥을 친다. 사회가 정한 굴레에 맞추지 못하면 정신병자가 되고, 그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자꾸 손발에 힘이 빠져가는 청춘들에게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승민은 말한다. 예의 그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함께. 하지만 확신에 차서.

“순간을 인생과 바꾸려는 게 아니야. 내 시간 속에 온전히 나로 있고 싶은 거야.” 

 

한 줄 평  이토록 아름다운 미친놈이라는 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