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첫 걸음, 정답은? - <청춘 스케치 Reality bites> 1994
감독: 벤 스틸러
출연: 위노나 라이더, 에단 호크, 벤 스틸러, 재닌 가로팔로, 스티브 잔, 스우지 커즈
장르: 멜로/로맨스, 드라마
청춘이라는 단어에 색을 입힌다면 그건 아마 조금 탁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푸릇한 빛을 내뿜는 색이 아닐까. 청춘이라는 이름을 달고 내딛는 첫 걸음은 마냥 희망적이라기엔 거칠고 우울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둡다기엔 여전히 어딘가 빛나고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영화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도 그런 청춘 같은 영화다. 어딘지 어설프고 촌스러운 듯 하지만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는 푸릇하게 빛난다.
|현실이 깨문다
개인적으로 한국 제목인 청춘 스케치보다 원제인 Reality bites(현실이 깨문다)가 훨씬 마음에 든다. 이 영화는 현실에 마구 깨물리는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다 같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는 첫 발걸음을 뗐다.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공유하며 같이 지내던 친구들은 조금씩 각자의 길을 찾아간다. 달라진 길 위에서 익숙했던 관계는 비틀리고 엎어지기도 한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릴레이나는 그와 친구들의 청춘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하지만 그의 의도대로 잘 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다니던 방송사에서는 위선적인 상사에게 한 방 날리고 그대로 해고된다. 실직자가 된 그는 버거집 따위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찾아간 버거집에서조차 퇴짜를 맞는다. 흠집난 적 없던 그의 자존심이 잔뜩 상처받았을 때, 친구 빅키가 제안한다.
“내가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니까 여기서 일하면 되겠다!”
갭 매장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다가 매니저로 승진한 빅키, 대학에서 배운 것이라곤 사회보장번호밖에 없다고 말하던 그의 제안에 릴레이나는 잔뜩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다. 급하게 사과하지만, 가시는 꽂혔다.
“난 갭 같은 곳에서는 절대 일하지 않을 거야......아니, 빅키 그게 아니라....”
|외롭고 두려운 첫 걸음, 정답은?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것은 오히려 릴레이나의 족쇄가 된 지 오래, 다큐멘터리는 계속 찍고 싶지만 직장에서는 잘렸고 집세도 밀렸다. 자신도 모르게 무시하고 있던 친구는 어느새 저만큼 앞으로 나가있고 자신은 무력하다. 잔뜩 비틀려서 애꿎은 친구에게 나쁜 말을 해버렸다는 것은 알지만, 똑똑하고 능력도 좋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된 건지 여전히 답답하고 화가 난다.
릴레이나와 빅키를 보며 나는 나를, 내 친구를, 어떤 사람들을 떠올렸다. 준비, 땅! 총소리는 울린 것 같은데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지 모르고, 조급한 마음에 앞서 달려가는 친구가 괜히 야속해진다. 자존심을 세우며 상대를 긁어대지만 실은 무력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 한없이 우울하고 작아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뭘까,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비틀리고 가시 돋친, 그리고 너무나 슬픈 릴레이나에게 트로이는 작은 것들을 말해준다. 담배 몇 개피, 커피 한 잔, 약간의 대화, 너와 나, 그리고 5불,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실은 그렇다. 그런 상황을 해결해 줄 영화 같은 정답은 영화 속에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바로 해결해 줄 순 없지만,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달래주는 작은 것들이다. 비록 현실이 마구 깨물고, 그 길의 정답은 절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겐 이런 것들이 홀로 가는 외롭고 두려운 길에 작은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외롭고 두려운 길에 첫 걸음을 떼는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릴레이나가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축사를 전한다.
"이제 우린 어떻게 할 것인가? 졸업생 여러분, 답은 간단합니다.
정답은…… ‘저도 몰라요’
The answer is…… ‘I don’t know’ ”
한 줄 추신
- OST도 아주 청춘스럽고 좋다
- 벤 스틸러가 20대 때 만든 영화, 그 역시 풋풋했다. 위노나 라이더와 에단 호크의 풋풋함도 사랑스럽다
lllil
'영화 > 드라마 / 로맨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틱, 휴가, 성공적? <로맨틱 홀리데이>, 2006 (3) | 2015.02.13 |
---|---|
'성공적'인 '로맨틱' 영화 -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0) | 2015.02.03 |
누구에게나 울림을 주는 단어, '엄마' <Mommy , 2014> (1) | 2015.01.23 |
잊지못할 첫사랑의 시작 - 건축학개론(Architecture 101, 2012) (0) | 2015.01.15 |
밴디트 (Bandits 1997) : '처음'이라는 두려움과 설렘 (0) | 2015.01.14 |